이 글에는 제휴 링크가 포함될 수 있으며, 링크를 통해 구매·가입 시 일정 수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글의 내용과 평가에는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9월 11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구글에 대한 정식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이 영상을 검색 결과에서 지워 달라”며 낸 삭제 요청서가, 해외의 한 공개 연구 데이터베이스에 그대로 올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청서에는 피해자의 이름·나이·학교·직장·휴대전화번호와 피해 정황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지워 달라고 낸 서류가 오히려 공개된 셈입니다.
이 사건이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구글은 20년 넘게 법적 삭제 요청의 사본을 외부 연구 데이터베이스로 보내 왔고, 이 사실을 아는 한국 이용자는 거의 없습니다. 저작권 침해 신고든 명예훼손 삭제 요청이든 같은 경로를 탑니다. 이 글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런 구조가 존재하는지, 그리고 내 개인정보가 구글 검색에 떠 있을 때 어떻게 지워야 하는지를 정리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나: 2주간의 타임라인
| 날짜 | 내용 |
|---|---|
| 8월 25일 | 여성가족부가 해외 연구 사이트에서 국내 피해자 정보 노출을 처음 확인. 구글과 해당 사이트에 즉시 삭제 요청 |
| 8월 25일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문제 게시물 200여 건에 대한 국내 접속 차단 긴급 의결 |
| 9월 5~7일 | 정부와 구글 간 연쇄 긴급 회의 |
| 9월 7일 새벽 | 해당 사이트에서 한국 피해자 관련 정보가 사라짐 |
| 9월 7일 | 개인정보위, 구글에 사실 확인용 자료 제출 요구 |
| 9월 9일 | 구글 공식 사과. 서버에서 관련 내용 영구 삭제, 한국발 법적 삭제 요청의 외부 전송 중단 |
| 9월 11일 | 개인정보위, 정식 조사 착수 공식 발표 |
노출된 게시물은 200여 건이고, 이 가운데 신원을 특정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 것은 15건 정도로 파악됐습니다. 다만 국내 피해자 정보가 언제부터 올라가 있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는 안전이 확인될 때까지 구글에 대한 삭제 요청 접수를 일시 중단한 상태입니다.
왜 이런 일이: ‘루멘’이라는 20년 된 구조

사고의 배경에는 루멘(Lumen)이라는 프로젝트가 있습니다. 하버드 로스쿨 버크먼클라인 인터넷·사회 연구센터가 운영하는 독립 연구 프로젝트로, 인터넷 기업들이 받은 콘텐츠 삭제 요청을 수집해 공개합니다. 목적 자체는 정당합니다. 온라인에서 검열이 어디서 얼마나 일어나는지를 연구자와 언론이 감시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고, 구글도 투명성 차원에서 2002년부터 자발적으로 삭제 요청 사본을 보내 왔습니다.
문제는 그 사본에 무엇이 담기느냐입니다. 구글이 루멘에 보내는 정보에는 보통 요청자 이름, 권리자 이름, 신고된 URL, 요청 국가, 요청 날짜, 그리고 첨부한 소명 자료가 포함됩니다. 피해 사실을 입증하려고 붙인 서류가 그대로 넘어갈 수 있는 구조라는 뜻입니다.
구글 규정대로였다면 공개되지 않았어야 했다
구글의 공식 안내를 보면 요청 유형에 따라 공유 범위가 다릅니다.
| 요청 유형 | 루멘 공유 방식 |
|---|---|
| 저작권·상표·법원 명령 | 요청자 정보를 포함해 공유 |
| 명예훼손 | 원칙적으로 요청자 이름 비공개 |
| 현지법 기반 요청 | 요청자 이름·연락처 비공개 |
| 정부기관 요청 | 원칙적으로 요청자 신원 비공개 |
| 요청서의 연락처(이메일 등) | 어떤 경우에도 공유하지 않음 |
규정대로였다면 이번 건은 애초에 이름이 나갈 일이 없었습니다. 구글의 신뢰·안전·규제·투명성 담당 부사장은 사과문에서 “민감한 정보나 구체적인 내용을 제3자 연구 데이터베이스와 공유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엄격히 지켜지지 않았다”고 인정했습니다. 규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규정이 작동하지 않아서 생긴 사고라는 뜻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추가로 문제 삼는 지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구글이 8월 12일 정보 공유와 관련한 이용자 동의 절차를 없앴다는 점입니다. 동의 절차가 사라진 시점과 노출이 확인된 시점(8월 25일)의 간격이 짧아, 개인정보위는 이 변경이 사고와 어떤 관계인지도 함께 들여다볼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정보위가 보는 쟁점은 ‘민감정보’
개인정보보호법은 성생활·건강·사상 등에 관한 정보를 민감정보로 따로 분류하고, 일반 개인정보보다 훨씬 엄격한 처리 기준을 둡니다. 성범죄 피해 사실과 피해 정황은 여기에 해당합니다. 개인정보위가 확인하겠다고 밝힌 쟁점은 크게 넷입니다.
- 법적 근거 — 구글이 민감정보를 외부 사이트 운영기관에 제공할 정당한 근거가 있었는가
- 동의 절차 — 제3자 제공에 필요한 동의를 적법하게 받았는가
- 규모와 기간 — 어떤 항목이 얼마나, 언제부터 넘어갔는가
- 원인 — 사람의 실수인가, 시스템 결함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관행이었는가
개인정보위는 조사 과정에서 긴급한 삭제·차단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즉시 시정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조사 결과에 따라 제재가 뒤따를 수 있지만, 해외 사업자 조사는 자료 확보에만 시간이 걸려 결론까지 수개월이 걸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내 정보가 구글 검색에 떠 있다면
이번 사건과 별개로, 구글은 검색 결과에서 개인정보를 지워 달라는 요청을 상시로 받습니다. 삭제 대상이 되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주소·전화번호·이메일 등 연락처
- 주민등록번호를 비롯한 신분증 번호
- 금융 계좌번호, 신용카드번호
- 서명 이미지, 신분증 사진
- 의료 기록
- 비밀번호가 함께 노출된 계정 정보
요청은 구글 ‘개인정보 삭제 요청’ 양식에서 문제가 되는 URL을 직접 지정해 넣는 방식입니다. 지정한 URL만 검토·삭제되므로, 같은 정보가 여러 페이지에 있다면 각각 넣어야 합니다. 내 연락처가 들어간 검색 결과를 자동으로 찾아 주고 새 결과가 뜨면 알려 주는 ‘나와 관련된 검색 결과’ 기능도 있으니, 정기적으로 확인하려면 이쪽이 편합니다.
한 가지 분명히 알아 둘 점은, 이 조치가 구글 검색 결과에서만 없애 준다는 것입니다. 원본을 올린 사이트에는 그대로 남아 있고, 다른 검색엔진이나 SNS에서도 계속 보입니다. 근본적으로 지우려면 원본 사이트 운영자에게 별도로 요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사건이 남긴 실질적인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삭제 요청서에 꼭 필요하지 않은 개인정보는 적지 않는 것입니다. 소명 자료를 붙일 때도 사건 입증에 필요한 최소한만 남기고 이름·연락처·소속 같은 부분은 가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요청서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요청자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이 이번에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내가 예전에 낸 삭제 요청도 공개돼 있나요?
요청 유형에 따라 다릅니다. 저작권·상표·법원 명령 요청은 요청자 정보를 포함해 공유되는 것이 구글의 원칙이고, 명예훼손·현지법·정부기관 요청은 원칙적으로 이름이 빠집니다. 연락처는 어떤 경우에도 공유하지 않는다는 것이 구글의 설명입니다.
Q. 지금도 내 요청이 외부로 넘어가나요?
구글은 이번 사건 이후 한국에서 접수된 법적 삭제 요청의 외부 사이트 전송을 중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이 조치가 한시적인지 영구적인지는 아직 명확히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Q. 루멘은 불법 사이트인가요?
아닙니다. 하버드 로스쿨 연구센터가 운영하는 학술 프로젝트이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자료를 공개합니다. 이번 문제는 사이트 자체가 아니라 구글이 보내지 말았어야 할 민감정보를 보낸 데서 비롯됐습니다.
Q. 조사 결과는 언제 나오나요?
개인정보위는 신속 처리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 일정은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해외 사업자 조사는 자료 확보에만 수개월이 걸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무리
이번 사건의 핵심은 해킹이 아닙니다. 아무도 침입하지 않았고, 설계된 대로 데이터가 흘러갔는데 그 설계에 민감정보를 걸러 낼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투명성이라는 좋은 명분으로 만들어진 구조가 가장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의 정보를 가장 먼저 흘려보낸 셈입니다. 개인정보위 조사가 규모와 기간을 어디까지 밝혀낼지가 남은 관전 포인트입니다.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내 이름을 구글에 한번 검색해 보고 연락처나 신분 정보가 떠 있는지 확인하는 것, 그리고 앞으로 어떤 플랫폼에든 신고서를 낼 때 꼭 필요한 정보만 적는 것입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도움이 필요하다면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d4u.stop.or.kr) 또는 여성긴급전화 1366에서 삭제 지원과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